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킵차크 칸국 (문단 편집) === 쇠퇴와 멸망 === ||<-3><:>[[파일:Golden_Horde_Uzbek.png|width=450]][br]|| ||<-3><:>'''우즈베크 칸 당시 강역'''|| ||[[파일:640px-Golden_Horde_1389_el.png|width=450]]|| ||<:>'''[[토크타미쉬 칸]] 당시 강역.'''|| 그러나 킵차크 칸국은 14세기 중반에 들어 [[흑사병]]의 유행과 함께 우즈베크 칸의 후계자였던 자니베크 칸이 1357년에 살해되면서 삐끗하기 시작했으며, 1360년 이후 20년에 걸쳐 '대혼란'이라고 부르는 계승분쟁 시기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권신 마마이가 등장해 본인의 입맛에 맞게 칸들을 갈아치우면서도 나름대로 킵차크 칸국의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대공국]]이 점차 세를 키워가면서 킵차크 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시도했고 1380년에는 모스크바 공작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이끄는 러시아 제후 연합군과 벌인 쿨리코보 전투에서 마마이가 대패하면서 제대로 망신을 당하고 만다.[* 평소대로라면 모스크바가 어느 정도 커졌을 때 짓밟아 이 지역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킵차크 칸국의 기본적인 전략이었지만, 1360년대의 내분이 이 타이밍을 놓치게 만들었고 이후에는 모스크바가 지나치게 강성해져버린다.] 한편, 킵차크 칸국의 동부 지역인 청장 칸국에선 [[티무르]]의 지원을 받은 [[토크타미쉬]]가 우루스 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청장 칸국의 지배자가 된 토크타미쉬는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1381년 쿨리코보 전투의 패배로 인해 힘이 약해져 있던 마마이를 몰아내고 킵차크 칸국 전역을 통일, '대혼란' 시기를 어느 정도 수습했다.[* 이후 마마이는 본거지인 크림반도로 도망쳤으나, 그 곳에 있던 제노바인 유력자에 의해 살해당한다.] 또한 1382년에는 노골적으로 독립할 낌새를 보이던 모스크바를 다른 루스 공국들과 연합해 털면서[* 이 때 모스크바의 방어 태세가 워낙 견고해서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토크타미쉬는 책략을 통해 이 위기를 극복하였는데, 모스크바 사람들에게 수비가 너무 견고해서 점령하는 걸 포기했으니 친위대와 함께 성을 둘러봐도 되겠냐고 물었고 이게 기만책인지 몰랐던 모스크바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순진하게 성문을 열어주었다. 이에 칸의 군대가 곧바로 성 안으로 진입해 모스크바를 말 그대로 초토화시켰고 많은 이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러시아에 대한 종주권은 다시 인정받았으나 과거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하였다. 게다가 동맹 관계에 있던 [[티무르 제국]]이 손에 넣은 페르시아를 탐내 타브리즈를 약탈한 것을 계기로 동맹은 결렬됐고, 여기저기에서 티무르에게 갈리다가 1395년에는 결국 수도 사라이 베르케까지 함락당했다. 이때 사라이, 아스트라한 등 킵차크 칸국의 주요 도시가 파괴되고 많은 사람들이 티무르 제국으로 끌려간 것을 계기로 킵차크 칸국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졌다. 킵차크 칸국이 전통적으로 일 칸국의 영토를 자기 것으로 주장해온 것을 감안하면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인간흉기 티무르에게 도전한 대가는 실로 가혹했다. 킵차크 칸국의 권위는 와해되고 영내 여러 부족과 토후들이 독립하기 시작했다. 칸위에서 쫒겨난 토크타미쉬는 예전부터 킵차크 칸국과 [[우크라이나]] 일대를 놓고 경쟁해오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으로 망명해서, [[비타우타스|비타우타스(Vytautas)]] 대공과 함께 킵차크 칸국을 공격했다. 리투아니아의 팽창은 1399년 보르스클라 강 전투에서 티무르가 임명한 테무르 쿠틀룩 칸과 에미르 에디구가 리투아니아군을 궤멸하면서 멈췄다. 하지만 이미 킵차크 칸국은 리투아니아에게 우크라이나의 거의 대부분을 빼앗겼고 리투아니아의 흑해 진출을 허용했다.[* 이 때 토크타미쉬는 패배를 직감했는지 러시아의 [[튜멘]] 지방으로 도주해 후일을 도모하려 했으나 에디구가 보낸 암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킵차크 칸국의 말년에는 여러 칸들이 번갈아 즉위하며 혼란이 이어지던 와중에 군벌이자 킹메이커, 망기트 부[* 훗날 [[노가이 칸국]]으로 발전한다.]의 수장 에디구가 부상했다. 에디구는 전술했듯이 리투아니아의 침공을 물리치고 1408년에는 조공을 거부하던 모스크바 등 러시아 내 공국들까지 약탈함으로써 킵차크 칸국의 위신을 세우려 했다. 에디구는 과거의 마마이와 유사하게 혼란기 킵차크 칸국에서 나름대로 중심을 지킨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에디구 사후 15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카잔 칸국]], [[크림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노가이 칸국]], [[부하라 칸국|우즈베크 칸국]][* 티무르 왕조를 [[중앙아시아]]에서 쫓아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의 모태.], [[카자흐 칸국]][* 우즈베크에서 갈라져 나온 무리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모태.] 등으로 분열되면서 킵차크 칸국은 대부분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이 칸국들이 떨어져가고 남은 킵차크 칸국을 [[이흐 칸국]]이라고도 한다. 마침내 아흐메트 칸 재위시절인 1476년 러시아 제후국들을 하나씩 통합하고 있던 모스크바 [[대공(작위)|대공]] [[이반 3세]]가 크림 칸국과 제휴하여 킵차크 칸국의 종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1480년 아흐메트 칸은 군사를 이끌고 모스크바를 응징하러 출전했지만, 양군은 우그라 강에서 대치만 하다 철군하였다. 러시아 역사가들은 이를 240년에 달하는 [[몽골-타타르의 멍에|몽골-타타르의 지배]]가 종료되었다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본다. 이후 이흐 칸국은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되기로 한 [[크림 칸국]]에 의해 수도가 약탈당하며 멸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